https://news.v.daum.net/v/20190529075016760
골목을 걷다 저택의 쪽문 앞에 핀 민들레꽃 한 송이를 보았다. 마침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를 손에 쥔 터라 그것을 놓고 스마트폰 셔터를 눌렀다. 어린왕자의 장미꽃이 갑자기 뇌리에 떠올랐기 때문이다. 책 속의 어린왕자도 노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책 속의 어린왕자는 말한다. “혼자 있는 나의 꽃은 수천 수만의 다른 장미 모두를 합친 것보다 훨씬 더 소중해. 그건 내가 물을 준 꽃이니까. 내가 고깔을 씌워주고 병풍으로 바람을 막아준 꽃이니까. 내가 벌레를 잡아준 것은 그 장미꽃이었으니까” 세상에 수많은 꽃들이 있지만 나의 마음을 쏟으면 유일한 ‘나의 꽃’이 된다는 것이다. 나의 꽃이 어느 별에 자라고 있다면 수많은 별 중에서 그 별마저 특별한 존재가 된다는 게 어린왕자의 생각이었다.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대다수는 나와는 무관한 타인이지만 나의 관심이 투여되면 나에게 특별한 존재가 된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는 김춘수의 시구처럼. 생텍쥐페리는 특별한 존재가 되면 그가 오는 발자국 소리에 가슴이 두근거리고 오후 4시에 온다면 3시부터 기다려진다고 했다. 우리에게 그런 존재가 있는가.
내가 저택의 쪽문 앞에서 스마트폰 셔터를 눌러대자 젊은 경비원이 문을 열고 빼꼼 얼굴을 내밀었다. "민들레꽃이 이뻐서 찍고 있어요." 내 얘기를 들은 그는 고개를 끄떡 하더니 도로 들어갔다. 경비원은 왜 대문 앞을 침범한 민들레를 뽑지 않은 걸까. 그도 한 송이 노란 꽃을 기다린 것일까. 젊은 경비원의 손목이 기특하고 고맙다.
후기: 이틀 후 저택의 쪽문을 다시 찾았더니 민들레꽃은 이미 진 상태였다. 우리의 삶 역시 길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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