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笑笑) 선생

Dahurian Birch 2019. 3. 19. 20:12

https://news.v.daum.net/v/20190319180611254

박지원의 <연암집>을 꺼내 읽는다. 연암은 느지막한 나이에 지방관직을 받았다. 행정가로서도 변함없이 활달하고 명쾌했다. 사람들 간의 시비를 웃으면서 잘 따져주었는데, 자신을 “소소(笑笑) 선생”으로 불러달라 했다. 하지만 그가 낙천적이라고 해서 흉년과 가난이 그의 마을을 피해가지는 않았다. 나라에서 관장하는 지원책은 복잡하고 효과가 없다면서 사양하고, 제 녹봉을 털어가며 구휼에 나섰다.

그러던 중, 연암은 다른 마을에 잠시 들렀다. 큰 문 앞에 수천명이 곧 숨넘어갈 듯이 죽 한 그릇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배식마저 늦어져 아우성이었다. 어쩌다 교졸 하나가 나오면 제 코를 친 뒤 “아전이 주린 백성을 친다”고 자해극까지 펼치는 이도 있었다. 문이 열리자, 모두 죽솥이 있는 ‘진창’으로 달려들었다. 아수라장이었으나, 없는 자들이 당연히 겪어야 할 일로 내버려 두었다. ‘엉망진창’이라는 자조적인 말, ‘국물도 없다’는 살벌한 말, ‘둘이 먹다가 하나 죽어도 모른다’라는 상찬의 말도 실은 이런 상황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연암은 그 마을의 현감에게 항의했다. “한 사발 국물에도 염치를 차리는 법”이라면서 어찌하여 백성들을 저렇게 내버려 두냐고 따진다. 가난이 그들의 잘못도 아니며, 가난을 구제하는 데도 “예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최소한의 조치로서 남녀와 나이를 살펴서 사람들 간의 순서를 만들어주라고 요구한다. 궁핍한 사람들도 ‘그냥 밥’이 아니라 ‘인간의 밥’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뜻이고, 사람을 돕는 데도 “예의”가 있다는 선언이었다. 18세기 말 조선에 있었던 일이다.

같은 시기, 저 멀리 영국에서도 빈곤 문제가 심각했다. 조선보다 잘살았지만, 빈곤의 규모도 만만치 않았다. 더 힘든 것은 정책 반대자와의 싸움이었다. 가난한 자를 도우면 ‘먹을 입’만 더 늘릴 뿐이라는 맬서스적인 힐난도 있었고, 어느 농학자는 “인류애”적 관점에서 그런 사람들을 전쟁에 내보내야 한다고 했다. 이런 섬뜩한 생각은 급기야 배고픔의 ‘유용성’론으로 비약했다. 임금이 오르면 게을러진다는 멘더빌의 <꿀벌의 우화>에 기대어서, 빈곤은 노동 의지를 높이는 만큼 개인과 사회 모두에게 유용하다는 논리였다.

이쯤 되니, 빈곤층의 ‘태도’마저 시빗거리가 되었다. “간곡히 호의를 청해도 시원찮을 마당에, 이를 권리로 본다”면서 미진한 최저생계 보조대책에도 딴지를 걸기 시작했다. 배를 곯아봐야 일을 한다는 선언이자, 영화 <부당거래>의 명대사 “호의가 계속되면 그게 권리인 줄 안다”의 기원이겠다.(이 말은 부패한 검사가 경찰의 엄연한 권리를 ‘호의’로 포장하는 교묘한 발언이었다.)

시간은 흘러도 게으름의 신화는 여전히 강고하다. 저소득층을 도울 요량으로 소득지원책을 내면, 그 내용을 살필 틈도 없이 ‘돈을 주면 더 게을러진다’는 주홍글씨 주장이 쏟아진다. 또 그런 얘기만 듣다 보면, 열심히 벌어 세금 내는 ‘부지런한’ 사람의 심사가 틀어지고, 나랏돈이 내 주머니돈처럼 아까워지는 것이 당연지사다.

사실은 그게 아니라고 해도 소용없다. 빈곤 연구로 유명한 아비지트 바네르지 연구팀이 최근에 소득 지원이 저소득층의 노동 의욕을 줄이는지를 분석했는데, 결론은 한마디로 “게으른 복지수급자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라”였다. ‘돈을 술값과 담뱃값으로 다 썼다’는 단골 메뉴도 사실무근이었다. 오히려 빈곤 퇴치와 불평등 축소에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세계적인 빈곤 문제 전문가인 마틴 라발리온 교수가 올해 내놓은 연구결과도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오늘의 언론과 정치는 99명을 제쳐두고 1명의 ‘일탈’ 사례만 들여다본다.

게다가 우리는 ‘실패한 게으름’에는 가혹하지만 ‘성공한 게으름’에는 얼마나 관대한가. 운이나 권세 덕분에 자신의 재능과 노력 이상으로 벌고도 몇백억 세금을 빼돌린 사람에게는 모른 척하다가도, 없는 사람의 몇만원에는 서릿발치는 눈빛을 보낸다. 연암이 “흉년만 만났다 하면 자기 생계만 도모하는 자들이 어찌 그리 많은가” 하면서 개탄했는데, 이 또한 참 변하지 않는다.

최근 저소득층의 상황이 좋지 않으니 각종 지원책이 나올 것이다. 정책 내용은 꼼꼼히 따지되, 철 지난 ‘태도’론이 나오지 않길 바란다. 이제 <연암집>을 덮으려니, 저 봄햇살만큼 연암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