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철학의 한 갈래인 포스트 구조주의로도 YG 주식투자자들이 대처하는 모습을 잘 설명할 수 있다. 20세기 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즈(Gilles Deleuze)의 책 『안티 오이디푸스』(Anti-Oedipus)에는 파라노이아(paranoia)와 스키조프레니아(schizophrenia)라는 용어가 나온다.
파라노이아는 편집증을, 스키조프레니아는 분열증을 뜻한다. 이를 두고 일본의 비평가 아사다 아키라(淺田彰)는 그의 저서 『도주론』(逃走論)에서 파라노이아형 인간을 ‘정주(定住)하는 사람’으로, 스키조프레니아형 인간을 ‘도망치는 사람’으로 설명하고 있다. '정주(定住)하다'는 정착하다 혹은 안주하다로 이해하면 된다.
파라노이아형 인간 혹은 ‘정착하는 사람’은 특정한 가치관에 집착하기 때문에 주변 환경 변화에 약하다. 사태가 급변해도 이를 파악하지 못하거나 인지하려고 들지 않는다. 예컨대 전쟁이 났을 때 성을 끝까지 고수하며 항전하고 장렬히 목숨을 바치는 스타일이다.
반면 스키조프레니아형 인간 혹은 ‘도망치는 사람’은 무슨 일이 생기면 도망친다. 이들은 특정한 가치관에 얽매이지 않고 주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늘 확인하려는 습성을 갖고 있다. 사태의 변화를 인지하는 센스가 강하다. 예컨대 일에 싫증이 나면 오래 버티지 못하고 쉽게 그만 두는 스타일이다.
질 들뢰즈의 포스트 구조주의 철학 용어를 주식투자에 적용해보면, 파라노이아형 인간은 앵커링효과가 강한 투자자와 유사하다. YG 주가가 승리 사태로 연일 급락하는데도 그 때마다 주식을 더 사모으거나 팔지 않고 끝까지 보유하고 있는 사람에 해당된다. 반면 스키조프레니아형 인간은 YG 주가가 급락할 때 재빨리 정리하고 주식을 털어버리는 투자자의 모습이다.
추락하는 YG주식을 침몰하는 배에 비유하면, '일단 이 배에 탄 이상 마지막까지 버텨 봐야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파라노이아형 투자자이고, “난 이 배와 함께 가라앉을 생각이 없습니다. 먼저 실례하겠습니다”라고 말하고 도망치는 사람은 스키조프레니아형 투자자로 볼 수 있다.
투자업계는 전통적으로 한 주식에 투자하면 오래 보유하면서 꾸준하게 장기 이익을 얻는 파라노이아형 투자관을 예찬한다. 투자한 뒤 얼마 안 돼 처분하고 또 다른 주식을 기웃거리는 행동을 거듭하는 스키조프레니아형 투자관을 비하하는 경향이 크다.
일반 사회에서도 우리는 '일관성 있는', '흔들리지 않는', '외길 10년'과 같은 말을 칭찬하는 구석이 있고, 계속 싫증내고 변화를 거듭하는 경우는 경박하고 나약하다고 치부하는 분위가 강하다.
하지만 일본의 컨설턴트 야마구치 슈(山口周)는 그의 저서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에서 특정한 가치관에 사로잡혀 편집증적으로 고집하는 것은 현대 사회에서 자살행위나 다름없다고 일갈한다. 그리고 도망치는 사람이 더 용기가 있고 강인하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보통 착각하기 쉬운데, 도망치는 것은 용기가 없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용기가 있기 때문에 도망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위험을 감지하는 능력과 도망칠 결단을 내릴 수 있는 용기다.
일본의 기업인이자 작가인 호리에 다카후미(堀江貴文)도 그의 책 『다동력』(多動力)에서 꾸준히 노력하는 시대는 끝났으니 이제는 싫증나면 바로 그만두라고 조언한다.
야마구치 슈의 주장대로 침몰해 가는 배 위에서 우물쭈물하다가는 그야말로 인생을 망칠 수 있기 때문에 재빨리 도망칠 줄 아는 스키조프레니아형 인간이 승리할 수 있다. 주식 투자에서도 결과적으로 YG 주식을 빨리 정리한 기관이 손실을 덜 입었다. YG 주식을 계속 보유한 투자자는 승리 사태의 파장이 갈수록 커지면서 YG 주가 하락도 깊어지고 손실도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도망치는 데도 용기가 필요하다. 투자업계에서도 마찬가지여서 주식을 처분하는 데도 용기와 강인함이 필요하다. 과거와 달리 지금의 투자 세계는 재빨리 도망칠 줄 아는 사람이 승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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