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v.media.daum.net/v/20180323231607851
위화의 산문집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2012)를 읽으니 사정은 그 반대임을 알 수 있었고, 나는 가벼운 충격을 받았다. 위화는 작품을 쓰면서 의식적·무의식적으로 루쉰을 경멸 내지는 혐오하고 있었음을 고백하고 있는 게 아닌가. 그 책의 ‘루쉰’이란 산문에서 위화의 고백적 진술을 읽으면서, ‘정신의 격투’란 게 있다면 이런 게 아닐까 생각했다.
요는 위화가 초등학교부터 고교 시절까지 온몸에 상흔을 새겨야 했던 문화대혁명의 비극과 루쉰이 관계있다는 것이다. 당시의 국어 교과서에는 루쉰의 문학과 마오쩌둥의 시사(詩詞)만이 수록되어 있었는데, 이는 루쉰의 반봉건·반제국주의적 격투가 사후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엉뚱하게도 문화대혁명을 정당화하는 ‘관제문학’으로 주입되어 신화화되는 아이러니를 낳았다는 것이다.
위화에 따르면, 문화대혁명은 ‘문학이 없는 시대’였는데, 마오쩌둥과 루쉰만이 문학으로 간주되어 반혁명분자를 숙청하는 근거로 기능하는 일이 일상화되었다는 것이다. 그런 상흔의 시대를 겪은 위화였기 때문에, 중국문학이 관제화의 족쇄에서 마침내 해방되었을 때, 자신으로서는 루쉰을 흔쾌히 긍정한다는 게 불가능했다는 것이다.
물론 이 산문의 끝에서 위화는 시간이 흘러 루쉰의 문학을 그것 자체로서 이해하게 되었고, 자신의 소설에 그의 문학이 끼친 내밀한 영향을 인정하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흔쾌한 인정은 아니다. 거기에는 긍정과 혐오의 양극화된 복합감정이 내면화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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