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터는 2가지 질문에만 답하도록 요구받았다. 첫째, 그의 이름으로 발행된 책들을 정말로 그가 썼는지, 둘째, 책 속의 주장을 철회할 용의가 있는지 하는 것이었다.
루터는 보름스에서 결의로 가득 차 있음에도 놀라울 정도로 공손한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자신의 등장을 일종의 장대한 서사시적 사건으로 만들고 있다. 첫째 날 그가 그의 책의 저자가 맞는지 묻는 첫 번째 질문에 루터는 나직한 목소리로 "예"라고 답했다. 두 분째 질문에 대해서는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요청했다. 둘째 날 그가 다시 황제와 제국의회 앞에 섰을 때, 루터는 더없이 꼼꼼하게 경외심을 표함으로써 자신의 말을 시작했다. "전능하신 황제 폐하, 존귀하신 제후 전하, 그리고 자비로우신 여러 귀족 나리..." 등의 칭호들이 이어졌다. 그런 다음 최대한 공손하게, 자신이 쓴 모든 글을 취소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거기에는 논쟁의 여지가 전혀 없는 신앙의 진리도 담겨 있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공식적으로 유효한 교의를 공개적으로 철회하는 것은 권력자들의 이해관계와도 맞지 않는다고 했다. 반대자들도 인정할 수밖에 없듯이 자신의 많은 글들은 유익하고 무해하며 어디서나 기독교인들이 읽을 많한 가치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전략을 통해 루터는 공의회가 던진 질문이 교회법상 잘못된 것임을 드러냈다. 어느 대목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말을 왜곡했는지 구체적으로 증명해 보인다면 그 부분을 기꺼이 고치겠지만 전체를 철회하지 않겠다는 것이 루터의 주장이었다. 이로써 루터는 제국의회에서 신학 논쟁이 벌어지는 일을 결단코 막으려 했던 반대자들에게 다시 교묘히 공을 넘겼다. "하나님의 자비로써 간청하오니, 황황제 폐하를 위시해 지위고하를 막막론하고 여러분께서는 제가 복음서와 예언서를 무시했다는 과오를 증명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지시대로 기꺼이 모든 과오를 철회할 것이며, 누구바다 앞장서 제가 쓴 책들을 불 속에 던져 넣겠습니다.
260-263쪽, 알렉산더 폰 쇠부르크, 세계사라는 참을 수 없는 농담, 청림출판,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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