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news.v.daum.net/v/20181123205934144
존 번연이 ‘천로역정’에서 묘사했듯이, 인간 세상 자체가 ‘허영의 시장(Vanity Fair)’인 것이다. 번연이 말하는 허영의 시장은 “새로 선 것이 아니라 아주 오래전부터 있어 왔다.” 더구나 연중무휴 개장한다. 번연은 이 세상에 사는 한 “허영의 시장을 지나지 않을 수 없다”고 한다. 이승에서의 삶은 날마다 서는 허영의 시장과 함께하는 삶이다.
철학자 칸트는 “유·무익성과는 관계없이, 최소한 남들만큼은 자신을 내보이려는 목적을 지닌 모방법칙이 유행”이라고 정의한다. 즉 모방으로서의 유행은 개인적 허영의 사회적 통로로서 작동하며, 사회 커뮤니케이션을 내포한다는 것이다. 칸트는 유행이 사회화 과정에서 차지하는 역할과 가치를 인정한다. 그러므로 그는 유행을 따르는 행위가 본질적으로 허영임을 비판하면서도, “굳이 유행을 따르지 않으려는 태도보다는 차라리 유행에 미치는 것이 더 낫다”고 한다. 유행을 전적으로 거부하는 비사회적 태도가 더 위험하다고 본 것이다. 역설적으로 칸트는 이런 태도에서 자기만 잘난 체하는 또 다른 허영을 본 것이리라.
지적 허영에 들뜬 사람은 자신의 말만 맞다고 한다. 도덕적 허영에 물든 사람은 자신만이 올바르다고 한다. 이는 자신의 지성과 도덕성을 지나치게 겉치레하려는 욕망의 표현이다. 이 모두 잘난 체하는 유아독존적 허영이다. 이에 정치적 허영도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정치적 허영 없는 정치인은 없겠지만, 지나치면 정치는 협상과 협력이라는 원칙을 잊고 오로지 최고 권력의 쟁취라는 환상을 먹고살기 십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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