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탁타의 나무 심는 법』의 교훈

Dahurian Birch 2019. 4. 3.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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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곽탁타를 처음 만난 때는 1999년 봄이었다. 동학들과 고문진보에 실린 유종원의 ‘종수곽탁타전(種樹郭탁駝傳)’을 강독하면서 그를 만났다. 곽탁타는 이름 대신 곱사등이 모습이 낙타와 비슷하다 하여 마을 사람들에게 ‘탁타’로 불리어졌고 본인 역시 그 별명이 마음에 들어 본래 이름을 버렸다. 탁타의 직업은 나무 심는 일이었다. 당시 장안의 권력자와 부자들이 정원의 관상수를 돌보게 하거나 과수원 주인들이 과수를 돌보게 하려고 다투어 그를 찾았다. 그럴만한 것이 탁타가 심은 나무는 옮겨 심더라도 죽는 법이 없을 뿐만 아니라 잘 자라고 열매도 일찍 맺고 많이 열렸다. 주위에서 탁타의 나무 심는 법을 흉내 내어도 같은 결과를 내지 못하였다. 사람들이 궁금하여 어떻게 하여 당신은 이렇게 나무를 잘 관리하는가를 물었다. 이 물음에 탁타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나는 나무를 오래 살게 하거나 열매가 많이 열게 할 능력이 없다. 나무의 천성을 따라서 그 본성이 잘 발휘하게 할 뿐이다. 무릇 나무의 본성이란 그 뿌리는 퍼지기를 원하며, 평평하게 흙을 북돋아주기를 원하며, 원래의 흙을 원하며, 단단하게 다져주기를 원하는 것이다. 일단 그렇게 심고 난 후에는 움직이지 말고 염려하지도 말 일이다. 가고 난 다음 다시 돌아보지 않아야 한다. 심기는 자식처럼 하고 두기는 버린 듯이 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나무의 천성이 온전하게 되고 그 본성을 얻게 되는 것이다.” 
덧붙여 당시 나무 심는 사람들의 병폐에 대해 말하였다. 

“다른 나무 심는 사라들은 그렇지 않다. 뿌리는 접히게 하고 흙은 바꾼다. 흙 북돋우기도 지나치거나 모자라게 한다. 비록 이렇게는 하지 않는다고 하더라고 그 사랑이 지나치고 그 근심이 너무 심하여, 아침에 와서 보고는 저녁에 와서 또 만지는가 하면 갔다가는 다시 돌아와서 살핀다. 심한 사람은 손톱으로 껍질을 찍어보고 살았는지 죽었는지 살피는가 하면 뿌리를 흔들어보고 잘 다져졌는지 아닌지 알아본다. 이렇게 하는 사이에 나무는 차츰 본성을 잃게 되는 것이다.”  

씨앗을 뿌려놓고 갓 나온 싹을 살짝 들어준다는 것이 도리어 새싹을 말라죽게 했다는 조장자(助長者)의 조급함이 떠오른다. 조장이란 알을 깨고 나올 그 순간 어미 새의 부리 질이다. 너무 일러서도 안 되고 너무 늦어서도 안 된다. 어미 새는 본능으로 알고 행하지만 본성을 잘 모를 경우 도와준다는 것이 도리어 일을 망치게 된다. 

곧 있으면 62회 식목일이다. 우리는 그 동안 나무를 참 많이 심었다. 1946년부터 2005년까지 우리 산림면적의 약 85%에 139억 그루의 나무를 연 평균 9만 3천㏊씩 심었다. 지금 산에서 자라고 있는 나무축적의 7%만이 1950년대 있었다. ’70년대 초까지는 나무를 심기 무섭게 방을 데우고 밥을 해먹기 위해 베어 썼다. 나무의 본성을 말하기 이전에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존이 우선이었다. ‘황폐의 윤회’로 대표되는 산림황폐화의 고리를 끊어야 했다. 우리는 ’60년대 이후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산림황폐화의 가장 큰 원인이었던 가정용 연료재를 화석연료로 대체하는 데 성공하였다. “연탄이 대도시를 비롯하여 ’70년대 초에는 농촌에까지 보급되면서 어느새 푸른 산이 되었다.”는 역사적 평가가 이를 잘 말해주고 있다. 이런 성과 위에 많은 나무를 심었고 사람들은 더 이상 심은 어린 나무를 베어 쓰지 않았다. 단 40년 만에 우리의 손으로 산림황폐의 윤회를 끊었다. 

그러나 짧은 기간에 이런 놀라운 성과를 거둔 이면에 조장자(助長者)의 폐해도 적지 않았다. 잘 심는 것보다 많이 심는 것이 능사인 시기도 있었다. 이 시기 나무를 심는 것은 사회선(社會善)이고 나무를 베는 것은 사회악(社會惡)이라는 인식은 지금도 우리의 의식 속에 남아 있다. 당시는 헐벗은 산을 하루라도 빨리 푸르게 만드는 것이 최대의 목표였던 시기였기에 이러한 시행착오를 감내할만한 사회적 합의가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떤가. 1950년대에 비해 우리 산림은 14배나 나무축적이 증가하였다. 나무 심는 시대에서 심은 나무를 관리해야 하는 시대로 변하였다. 지금 우리는 탁타의 나무 심는 법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탁타는 나무 심는 기술을 말하지 않았다. 탁타는 나무의 본성을 알고 제 때에 그 본성대로 관리해야 한다는 방향을 말하였다. 지금 우리 산림의 본성은 어떤가. 커진 체격에 비해 체력은 그리 좋아 보이지 않는다. 소나무재선충병, 솔잎혹파리, 참나무시들음병 등 병든 산림이 적지 않다. 우선 아픈 곳을 진단하고 건강한 산림으로 회복시켜야 한다. 우리 산림을 바라보는 국민과 산주의 기대는 어떤가. 국민은 건강한 산림에서 깨끗한 물, 휴양, 맑은 공기가 지속적으로 나오기를 바란다. 산주는 나무를 베어서라도 생활에 필요한 소득을 원한다. 전체 산림의 69%를 사유림이 차지하고 있는 이상 갈등이 안 생길 수 없다. 국민의 기대와 산주의 바람은 모두 본성이다. 과제는 국가가 국민의 기대와 산주의 바람을 융화시키는 것이다. 당연히 갈등을 푸는 지혜가 필요하다. 탁타의 나무 심는 법을 따른다면, 앞으로의 산림정책은 산림의 본성을 회복하고 산림을 바라보는 국민의 기대와 산주의 바람에 따라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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