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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가 멈추면 미래도 없다

Dahurian Birch 2017. 12. 12. 07:20

본질은 무엇일까. ‘나침반 없는 항해’다. 누구도 가 보지 않은 길을 열었기에 세계 경제사에 보기 힘든 대박을 터뜨렸다. 

성공은 천행일까. 이 세상에 저절로 입에 떨어지는 감이 어디 있겠는가. ‘미래를 일구는 창의(創意)’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 아닐까. 과거 개발연대 때만 그런 것도 아니다. 정보통신기술(ICT)이 나라경제의 부침을 가른 2000년대 ‘3.5차 산업혁명시대’에도 똑같았다.

반도체의 씨가 뿌려진 것은 1974년이다. 삼성이 초보적인 집적회로를 만드는 한국반도체를 인수하면서 반도체 역사는 시작된다. 당시 경제기획원과 상공부에서 했다는 말, “기술자가 없지 않느냐.” 모두가 고개를 내저었다. 하지만 일본의 ‘반도체 선생’을 몰래 불러와 묻고 개발한 결과 독자적인 기술개발에 성공한다. 반도체 굴기는 얼마나 대단할까. 올해 경제성장률의 3분의 1은 반도체가 일궈낸 성과다.

스마트폰도 마찬가지다. 1997년 개인휴대통신(PCS)으로부터 시작된 이동통신 혁명. 이후 CDMA(다중코드분할방식·동기식)와 GSM(비동기식) 표준 논쟁이 불붙고, 아무도 가지 않은 CDMA의 길을 걸은 한국. “통신이나 가능할까”는 의구심을 떨치고 대성공한다. CDMA 통신기술 개발에 뛰어든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과 민간 기업들. 미·일·유럽연합(EU)에 비해 기술초보였던 우리 산업이 스마트폰 큰손이 된 것도, 삼성이 애플과 특허경쟁을 하는 것도 이로부터 비롯된다.

나라의 운명을 가른 반도체와 스마트폰. 창의가 일군 ‘신의 한수’다.

반도체와 스마트폰은 어떤 환경에서 탄생했을까. 1999년 출범한 김대중(DJ)정부가 큰 역할을 한다. ‘규제·노동 개혁’을 외친 김영삼(YS)정부의 경제철학을 이은 DJ. ‘자유시장경제’를 외쳤다. ICT 개화의 싹이 튼 것은 그때다. 간섭을 삼갔다. 민간 기업의 창의가 발동되고, 창의는 ICT의 개화로 이어졌다. 우리 정보통신산업의 들보와도 같은 CDMA 기술 기반은 그때 쌓은 금자탑이다. 지금은 그것을 먹고산다.

아널드 J 토인비의 말, “노 젓는 손을 멈추면 지고 만다.” 4차 산업혁명의 막은 올랐다. 창의는 수출을 일으키고 나라를 일으킨다. 창의가 멈춘 나라에는 미래도 없다.

http://v.media.daum.net/v/20171211221520090